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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작가의 곁에서

정우경, 시간을 엮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한 화가의 삶과 그림

나는 정우경과 36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 살아왔다.

1990년 12월 10일 혼인신고를 했으니, 이제 부부로 살아온 시간이 우리가 젊었던 시절보다 훨씬 길어졌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한 사람의 아내와 함께 살아온 것이기도 하지만, 한 화가가 자기 그림을 찾아가는 과정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본 사람이기도 하다.

지금은 내가 아내의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전시와 작품 자료를 챙기고, 필요하면 함께 해외에도 나가고, 어떻게 하면 작가 정우경을 제대로 알릴 수 있을지를 같이 고민한다.

주변 작가들이 아내에게 남편이 많이 도와줘서 좋겠다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내게도 애쓴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 쑥스럽다.

나는 처음부터 지금 같은 남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나 역시 생활에 쫓겼고 시간적인 여유도 많지 않았다. 아내가 미술 행사 때문에 늦게 귀가하는 것이 싫었던 때도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 전시와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지금처럼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림 때문에 늘 반대편에 서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내가 아이를 키우며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시절에도 우리는 많이 이야기했다. 아내는 자신이 그림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을 말했고,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다시 붓을 잡을 수 있도록 함께 방법을 찾았다.

돌이켜보면 우리 둘 다 처음부터 답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부딪히고, 이야기하고, 이해하고, 또 살아가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 상황에서 아내는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면서 그림까지 그렸다.

육아와 살림, 경제적인 부담, 작가로서의 불확실한 미래를 한꺼번에 안고 살아야 했으니 심리적인 압박도 상당했을 것이다.

아마 수없이 자신에게 물었을 것이다.

‘내가 이 길을 계속 가는 것이 맞을까.’

그런데 아내는 그림을 놓지 않았다.

처음에는 세상을 바라보며 그렸다

1998년부터의 작품을 다시 꺼내 한 해씩 살펴보니 지금의 그림과는 상당히 다르다.

꽃과 과일, 화병과 풍경을 그렸고, 계곡과 나무, 길과 오래된 집을 그렸다. 당시에는 대상을 보고 그리는 구상회화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지금 옛 그림을 다시 보면 재미있는 것이 있다.

형태를 정확하게 그리는 것만큼이나 작은 붓질을 계속 쌓고, 색과 색을 만나게 하고, 화면에 어떤 리듬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았다.

2000년대 초의 풍경에는 길이 자주 등장한다.

당시에는 그저 풍경 속 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20여 년 뒤 그 길이 실타래에서 풀려나온 실과 만나 전혀 다른 의미의 길로 다시 나타나는 것을 보면, 작품이라는 것이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 자신도 그때는 몰랐던 무언가가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과거 현재 그리고...」

2007년 무렵부터 아내는 작품에 「과거 현재 그리고...」라는 제목을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 제목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보통 읽는 의미다.

과거, 현재, 그리고...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그다음의 시간은 열려 있다.

아내는 ‘미래’라고 끝내지 않았다.

말줄임표를 남겼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이 있고,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람이 있고, 아직 그리지 않은 그림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내가 말한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과거와 현재를 그린다.’

여기에서 ‘그리고’는 앞뒤를 연결하는 접속사인 동시에 화가가 무엇인가를 ‘그린다’는 의미가 된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 지금 나는 이 제목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아내가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그리고, 현재의 삶을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그리고, 사람을 그리고, 자연을 그리고, 때로는 세상의 아픔을 그렸다.

과거를 현재의 손으로 다시 그렸다.

그리고 오늘의 그림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과거가 된다.

그러면 현재의 아내가 다시 그 위에 다음 그림을 이어간다.

그래서 지금 나는 「과거 현재 그리고...」가 단순한 작품 제목이 아니라 아내가 그림을 대하는 방식 자체를 담고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위기, 그리고 자기 그림을 찾아 나서다

내가 기억하기로 아내에게 첫 번째로 큰 위기가 찾아왔던 시기는 2009년에서 2010년 무렵이었다.

2009년까지 대전의 서양화가 이돈희 선생 작업실에서 수학했다.

그 무렵의 작품을 보면 구상적인 풍경과 꽃을 그리면서도 화면을 긁고 덮고 다시 칠하고, 점과 기호를 반복하는 등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결국 아내가 부딪힌 질문은 하나였던 것 같다.

‘내 그림은 무엇인가.’

2010년부터 아내는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자신만의 그림을 찾아보기로 했다.

인체도 그리고 꽃도 그리고 추상적인 그림도 그렸다. 점을 찍고, 긁고, 물감을 두껍게 올리고, 별의별 방법을 다 시험했다.

당시에는 방향을 못 잡고 헤매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30년 가까운 작품을 뒤에서부터 다시 보면 그 시간이 반드시 필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위기는 아내에게 그림을 포기하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의 그림이 아닌 자기 그림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을 주었다.

그리고 ‘뜨개’를 만났다

2011년 작품에서부터 직물이나 짜임을 연상시키는 구조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2012년에 이르면 변화가 확실해진다.

실타래와 뜨개바늘이 등장한다.

산도 뜨개가 되고 나무도 뜨개가 되고 하늘과 땅까지 반복되는 코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아내는 실제 실을 사용하지 않았다.

물감으로 캔버스 위에 그렸다.

나는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내가 뜨개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뜨개가 가진 기억과 시간을 그림으로 바꾸고 싶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시작에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뜨개질하던 기억이 있다.

한 코를 만들고 그다음 코를 이어가는 어머니의 손.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을 만들어주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이는 일.

그 안에는 기다림이 있고 정성이 있고 돌봄이 있다.

그래서 아내는 결국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는 아주 간단한 말을 갖게 되었다.

뜨개는 사랑이다.

Knitting is Love.

나는 이 말을 단순히 따뜻하고 예쁜 문장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뜨개의 구조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한 코만으로는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코가 다음 코와 연결되고, 또 다음 코와 연결되어야 하나의 면이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혼자 살아가는 것 같아도 결국 누군가와 연결되어 살아간다.

두 번째 위기 - 가장 힘들었는데 그림은 가장 뜨거웠다

내가 보기에 아내가 작가로서 가장 힘들었던 또 한 번의 시기는 2013년부터 2016년 무렵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변변한 화실조차 없었다.

작품다운 작품을 마음 편하게 펼쳐놓고 그릴 만한 공간도 넉넉하지 않았다.

그림이라는 것이 마음만 있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캔버스를 펼쳐놓을 자리가 있어야 하고, 물감을 놓고 며칠씩 이어서 작업할 공간이 있어야 한다. 큰 그림을 그리려면 더 그렇다.

그런 환경을 제대로 마련해주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마음 한편에 미안함이 남는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다.

내가 보기에는 아내가 가장 힘들었던 이 시기에 오히려 작품이 가장 좋아졌다.

2012년 무렵 발견한 뜨개 회화가 2013년부터 자기 언어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산과 풍경뿐 아니라 사람도 그리고, 화폐와 역사적 인물도 그렸다.

멀리서 보면 인물이나 풍경인데 가까이 가면 수많은 작은 붓질로 해체되는 정우경만의 화면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작품 수도 가장 많았던 시기 가운데 하나다.

현실의 힘든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그랬는지는 나도 정확히 모른다.

그런데 화실에 들어가면 정말 그림에 몰입했다.

언젠가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그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 아내는 40대 중반이었다. 지금보다 체력도 좋았다.

좋은 화실이 있어서 많이 그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 놓고 그림을 그릴 공간조차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리고 또 그렸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 두 번의 위기를 이렇게 생각한다.

첫 번째 위기에서 자기 그림을 찾았다면, 두 번째 위기에서는 그렇게 찾은 그림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삶

그런데 아내가 그렇게 이를 악물고 끝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데에는 내가 옆에서 보아온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아이들이었다.

아내는 우리가 넉넉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미래까지 좁아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성장해 자신의 가정을 이루어야 할 때, 부모의 사회적 위치나 경제적인 형편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망설이거나 포기해야 하는 일만큼은 만들고 싶지 않아 했다.

나는 그 마음을 가까이에서 보아왔다.

그렇다고 단순히 돈을 많이 벌거나 이름을 알려야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부모가 먼저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힘들어도 자신이 선택한 일을 계속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자라기를 바랐다.

실제로 아내는 훗날 자신의 글에서도 다시 붓을 잡은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의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정하고 도전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이들이 자라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래서 이제 돌이켜보면 아내가 그토록 그림을 놓지 않았던 것은 자신의 꿈만을 위한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림은 아내 자신의 삶이었지만, 동시에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삶의 태도이기도 했다.

말로 포기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대신, 자신이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떨어지면 다시 그렸다

지금 아내의 이력만 보는 사람은 개인전과 수상, 해외전 같은 결과를 먼저 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이력 사이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조금은 알고 있다.

낙선도 많았다.

대전광역시 미술대전 초대작가가 되기까지 12년 동안 도전했다.

100호 작품 두 점을 준비해 출품했는데 두 점 모두 떨어진 적도 있었다.

그림을 계속하기 위해 개인 과외도 하고 미술교습소도 운영했다.

지금처럼 휴대전화 하나로 수백 장씩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절도 아니어서 작품 자료를 얻기 위해 필름을 여러 통씩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다시 했다.

떨어지면 다시 그렸다.

안 되면 또 했다.

그리고 또 떨어지면 다시 캔버스 앞에 앉았다.

생각해보면 이것 역시 뜨개와 닮았다.

한 코가 잘못되었다고 뜨개 전체를 버리는 것이 아니다.

다시 풀고, 다시 잡고, 다음 코를 이어간다.

먹고는 살아야 했다

2017년 무렵에는 비교적 작은 크기의 귀엽고 친근한 강아지와 고양이 그림도 많이 그렸다.

내가 이 이야기를 숨기고 싶지는 않다.

먹고는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작가라고 해서 현실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생계를 생각하며 시작했던 작은 작품 속에서 하트와 뜨개가 아주 직접적으로 만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뜨개로 만든 하트가 있고 그 아래 강아지와 고양이가 있고 실 한 가닥이 그들을 연결한다.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이유로 시작한 작품이 오히려 ‘뜨개는 사랑이다’라는 말을 가장 쉽게 보여주는 그림이 된 셈이다.

개인의 기억에서 사람과 사회로

시간이 지나면서 뜨개는 어머니의 기억에만 머물지 않았다.

역사적 인물과 화폐가 들어왔고, Mother Teresa와 아이가 들어왔으며, 사회적 사건과 가족의 모습이 들어왔다.

2016년 Mother Teresa와 아이의 작품을 보면 나는 사람의 얼굴보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먼저 보인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안고 돌본다.

한 코가 다음 코를 붙잡듯 사람이 사람을 붙잡는다.

2020년 팬데믹 때는 마스크를 쓴 엄마와 아이가 등장했다.

서로 가까이 갈 수 없는 시대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누군가와 연결되어야 살아갈 수 있었다.

반대로 「Smiling Family」처럼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크게 웃고 장난치는 가족도 그렸다.

사랑은 늘 엄숙한 것이 아니다.

같이 웃고, 장난치고, 때로는 다투면서도 다시 함께 살아가는 것도 사랑이다.

3년 동안 지켜본 9m의 시간

2016년부터 아내는 이전과는 규모가 다른 작업을 시작했다.

144.5 × 900.0 cm.

첫 번째 9m 대작 「과거 현재 그리고... (대지에 충실하라)」였다.

완성까지 3년이 걸렸다.

나는 그 긴 시간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9m가 아니다.

그 거대한 화면을 수많은 작은 붓질로 조금씩 채워나갔다.

몇 달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그림은 계속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큰 작품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 나는 이 작품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을 넘어 때로는 존경스럽다는 마음까지 든다.

한 사람이 한 작품 앞에서 3년이라는 시간을 견디고 반복했다는 사실을 내가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작품이다.

3년 동안 그 긴 시간을 지켜본 내게는 이 작품이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이후 대지 작업은 계속 이어졌고 결국 9m 작품은 세 점이 되었다.

2024년 아내는 자신의 34번째 개인전에서 9m 대지 시리즈 세 점을 한 공간에 함께 펼쳤다.

작가 자신도 이 세 작품에 9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기록했다.

그 세 작품을 한 공간에서 바라보면서 나는 다시 생각했다.

작가에게 시간은 달력에 적힌 숫자가 아니라 화면에 남아 있는 흔적일지도 모른다고.

한 번의 붓질은 작지만 그것이 수천 번, 수만 번 반복되면 거대한 화면이 된다.

하루는 짧지만 그런 하루가 쌓이면 몇 년이 된다.

그것도 뜨개와 닮았다.

한 코씩 이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하나의 커다란 면이 만들어진다.

아내는 그렇게 시간을 그렸다.

뜨개가 에너지가 되고 공간이 되다

2020년을 지나면서 작품에는 또 다른 변화가 나타났다.

반복되는 코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Energy」 연작이다.

이전까지 뜨개가 산과 사람, 꽃과 사물의 표면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뜨개 조직 자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코가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기도 하고, 반대로 화면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처럼 보이고, 가까이 다가가면 그 에너지가 결국 작은 붓질 하나하나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이것도 아내의 삶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어느 한순간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하루하루가 쌓여 한 사람의 시간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2021년에는 그 에너지가 실제 화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3D Energy」다.

평평했던 화면이 중첩되고, 접히고, 휘어지고, 앞으로 튀어나왔다.

관객은 더 이상 정면에서 그림만 바라보지 않는다.

옆으로 움직여야 하고, 때로는 작품의 안쪽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빛을 받는 방향에 따라 작품의 표정도 달라진다.

보는 뜨개에서 경험하는 뜨개로 바뀐 것이다.

회화가 평면을 벗어나 공간으로 확장되었지만, 그 출발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작은 붓질 하나가 다음 붓질을 만나고, 한 코가 다음 코를 만나면서 전체를 만든다.

형태는 달라졌지만 아내가 오랫동안 해온 이야기는 그대로였다.

생명이 자라고 길이 되다

2023년과 2024년에는 꽃과 식물이 크게 늘어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꽃 위에 뜨개무늬를 얹은 것이 아니다.

뜨개 조직 자체가 꽃이 된다.

한 코가 다음 코로 이어지고 그것이 증식하면서 꽃잎과 줄기, 숲과 정원을 만든다.

나는 그래서 이 시기의 꽃을 단순한 꽃 그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내가 오랫동안 이야기해 온 생명 에너지가 가장 밝고 풍성하게 나타난 모습에 가깝다.

어머니의 손에서 시작된 뜨개가 사람과 사회를 지나 에너지가 되고, 이제 다시 생명이 되어 피어난 것이다.

그리고 2025년에는 길이 다시 나타난다.

초기 풍경에서도 길은 많았다.

하지만 이제 길은 전혀 다르다.

실타래에서 풀려나온 실이 길이 된다.

산을 지나고 들판을 지나 화면 밖으로 계속 이어진다.

실타래가 지금까지 살아온 기억이라면, 풀려나온 실은 지나온 시간이고, 아직 풀리지 않은 실은 앞으로 살아갈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길은 결국 한 사람의 삶이다.

나는 이 작품들을 보면서 2007년부터 사용해 온 「과거 현재 그리고...」의 말줄임표가 오랜 시간이 지나 길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그 말줄임표 뒤에는 무엇이 올지 아무도 몰랐다.

아내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그림은 계속되었고, 시간은 이어졌고, 그 끝나지 않은 문장은 어느 순간 화면 속 길이 되어 다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뉴욕에서, 우리는 조금 달라졌다

2019년 10월, 우리는 함께 뉴욕에 갔다.

아내에게는 2012년 마이애미, 2013년 시애틀에 이은 세 번째 미국 방문이었다.

6년 만에 다시 미국에서 작품을 선보일 기회가 생겼고, 출국 전 며칠 동안 둘이 머리를 맞대고 미술관과 갤러리 동선을 짰다.

9박 11일이었다.

뉴저지에서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맨해튼으로 들어가 하루 종일 걷고, 밤이 되어서야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참 열심히도 돌아다녔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는 책과 인쇄물로만 보던 작품들을 실제로 마주했다.

특히 고흐의 두꺼운 붓 터치를 눈앞에서 본 아내는 몸이 저절로 반응할 정도로 좋아했다.

붓이 지나간 방향을 따라 손까지 움직였다고 훗날 자신의 글에 썼다.

구겐하임에서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발견하자 그냥 지나치려는 나를 붙잡고 여기서는 꼭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반대로 브로드웨이에서 비싼 돈을 주고 「알라딘」을 보러 갔을 때는 아내가 피곤해서 계속 졸았다.

나는 결국 한마디 했다.

“이게 얼마짜린데... 졸음이 오냐?”

아내는 훗날 그것까지 글에 적어놓았다.

그런 게 우리 여행이었다.

대단한 예술 이야기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길을 헤매고, 지치고, 티격태격하고, 웃으면서 또 다음 미술관으로 갔다.

그리고 어느 날 록펠러센터 전망대에 올랐다.

맨해튼과 허드슨강 너머로 붉게 노을이 지고 있었다.

며칠 동안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우리도 그 순간에는 가만히 서서 그 풍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우리도 저렇게 곱게 늙어가자.”

아내의 기록에는 그때 우리가 손깍지에 힘을 주었다고 적혀 있다.

나는 그 장면을 좋아한다.

젊었을 때 미술 행사 때문에 늦게 들어오는 아내가 싫었던 내가, 시간이 흘러 아내와 뉴욕까지 와서 하루 종일 미술관과 갤러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람이 참 많이도 변했다.

파리, 그리고 함께 보는 그림

2022년에는 파리에 갔다.

코로나19로 막혀 있던 해외여행이 다시 열리기 시작한 때였다.

아내는 카루젤 뒤 루브르에서 열린 아트페어에 참여했고, 우리는 전시장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다.

좋은 호텔은 아니었다.

오래된 건물이라 엘리베이터도 없고 에어컨도 없었다.

한여름 파리에서 선풍기 하나로 버텨야 했으니 아내가 잠시 나를 원망했다는 이야기도 훗날 글에 그대로 써놓았다.

그런데 전시를 마치고 우리는 또 미술관으로 향했다.

오랑주리에서 모네의 「수련」을 보고, 루브르를 돌고, 센강을 따라 파리를 바라봤다.

아내는 그 여행을 기록하면서 수많은 명작을 직접 볼 수 있도록 늘 함께해주고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는 ‘소중한 친구 같은 사랑하는 남편’에게 감사한다고 썼다.

그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조금 쑥스러웠다.

나는 내가 처음부터 그런 남편이 아니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고마웠다.

우리 둘 다 조금씩 변해왔다는 뜻일 테니까.

그림을 계속한다는 것

아내의 이력을 보면 개인전 몇 회, 단체전 몇 회, 어느 미술관에서 전시했고 어떤 상을 받았는지가 먼저 보인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 숫자 사이에 있었던 시간을 더 많이 기억한다.

낙선하고 집으로 돌아왔던 날.

그림을 어디에 펼쳐놓아야 할지 고민했던 날.

재료비를 걱정했던 날.

아이들을 돌보다 다시 캔버스 앞에 앉았던 날.

해외전 참가를 앞두고 비용을 계산하며 갈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했던 날.

그리고 결국 다시 해보자고 결정했던 날.

2019년 뉴욕 전시를 마친 뒤 아내는 현실과 이상의 차이 때문에 좌절한 적도 있었지만,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응원 덕분에 계속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고 썼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미국행을 과감하게 결정한 것을 잘했다고도 했다.

그런 시간을 지나 2024년에는 제22회 이동훈미술상 특별상을 받았고, 이듬해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수상작가전을 열었다.

나는 그런 결과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전에 수없이 반복했던 작은 선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릴 것인가.

이번에도 다시 지원할 것인가.

떨어졌는데 또 해볼 것인가.

돈이 드는데도 작품을 들고 밖으로 나갈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 아내는 대부분 다시 그림 쪽을 선택했다.

그 작은 선택들이 쌓여 지금의 정우경을 만들었다.

2026년, 아직 끝나지 않은 문장

2026년에도 아내의 그림은 계속되고 있다.

파리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다시 새로운 작품을 그렸다.

그리고 최근의 작품 가운데 「과거 현재 그리고... (The Pain of the Himalayas)」가 있다.

이제 뜨개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 대한 기억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개인의 기억에서 출발했지만 사람과 가족, 사회와 자연을 지나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는 언어가 되었다.

그렇다고 출발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무리 화면이 커지고, 평면이 공간으로 나오고, 다루는 이야기가 넓어져도 결국 작은 붓질 하나에서 시작한다.

한 번 긋고, 그 옆에 다시 긋는다.

그리고 또 긋는다.

나는 그것이 아내의 그림에서 가장 변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1998년의 풍경에도 작은 붓질이 있었고, 2012년 뜨개 회화에도 있었고, 9m의 대작에도 있었으며 지금의 그림에도 있다.

작은 것 하나를 반복해서 결국 자기만의 세계를 만드는 것.

그것이 어쩌면 정우경이 지난 시간 동안 그림을 그려온 방식이고, 살아온 방식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변했다

아내의 그림만 변한 것은 아니다.

나도 변했다.

처음부터 지금처럼 아내의 작업을 이해하고 지지했던 것은 아니다.

그림보다 당장의 생활이 먼저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고, 미술 행사 때문에 늦게 귀가하는 아내가 못마땅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아내가 가만히 앉아 내가 알아주기를 기다린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했다.

우리도 부딪혔다.

그러면서 계속 대화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한때는 미술 행사 때문에 늦게 들어오는 것도 싫어했던 내가 나중에는 아내와 함께 뉴욕에 가서 전시를 치르고 하루 종일 미술관과 갤러리를 돌아다녔다.

파리에서는 전시를 마치고 또 미술관을 찾아다녔다.

지금은 전시를 함께 준비하고, 작품과 자료를 정리하고, 홈페이지를 들여다보고,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한다.

주변 작가들이 아내를 부러워한다는 이야기도 듣고, 내게 애쓴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있다.

그럴 때면 조금 쑥스럽다.

내가 처음부터 그런 남편이 아니었다는 것을 내가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지난 36년 동안 아내만 그림을 그려온 것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아내가 한 코 한 코 붓질을 이어가며 자신의 그림을 만들어가는 동안, 우리 가족도 하루하루를 이어가며 하나의 시간을 만들어왔다.

어머니의 뜨개질에서 시작된 사랑의 기억은 아내의 그림이 되었고, 엄마가 된 아내는 그 그림을 포기하지 않는 삶으로 다시 아이들에게 사랑을 건넸다.

그리고 그 옆에서 나도 조금씩 달라졌다.

젊었을 때는 알지 못했던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언제나 거창한 일은 아닐 것이다.

옆에 있어주는 것.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때로는 부딪혀도 다시 이야기하는 것.

힘들 때 다음 한 코를 이어갈 수 있도록 붙잡아주는 것.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뒤를 돌아봤을 때, 그 수많은 작은 순간들이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

아내는 그것을 그림으로 보여주었다.

뜨개는 사랑이다.

이제 나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예전보다 조금 더 알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아내의 그림을 도와준 것만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아내의 그림도 지난 36년 동안 나를 조금씩 바꿔 놓았다.

전병필 정우경 작가의 남편이자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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