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 작가의 곁에서
정우경, 시간을 엮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한 화가의 삶과 그림 · 1998–2026
나는 처음부터 지금 같은 남편이 아니었다
나는 정우경과 36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 살아왔다. 1990년 12월 10일 혼인신고를 했으니, 이제 부부로 살아온 시간이 우리가 젊었던 시절보다 훨씬 길어졌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한 사람의 아내와 함께 살아온 것이기도 하지만, 한 화가가 자기 그림을 찾아가는 과정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본 사람이기도 하다.
지금은 내가 아내의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전시와 작품 자료를 챙기고, 필요하면 함께 해외에도 나가고, 어떻게 하면 작가 정우경을 제대로 알릴 수 있을지를 같이 고민한다. 주변 작가들이 아내에게 남편이 많이 도와줘서 좋겠다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내게도 애쓴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 쑥스럽다. 나는 처음부터 지금 같은 남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나 역시 생활에 쫓겼고 시간적인 여유도 많지 않았다. 아내가 여러 미술행사 때문에 늦게 귀가하는 것이 싫었던 때도 있었다. 그 사이 아내는 육아와 살림, 경제적인 부담과 작업을 함께 감당했다.
아마 수없이 ‘내가 이 길을 계속 가는 것이 맞을까’ 하고 자신에게 물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내는 그림을 놓지 않았다.
1998–2007 | 보는 것에서 시작해 「과거 현재 그리고…」로
1998년부터의 작품을 다시 보면 꽃과 과일, 화병과 풍경, 계곡과 나무, 길과 오래된 집이 보인다. 당시에는 구상회화의 성격이 강했지만 작은 붓질을 쌓고 색과 색을 만나게 하며 화면의 리듬을 만드는 데 이미 관심이 있었다.
2000년대 초 풍경에는 길이 자주 등장한다. 그때는 실제 풍경 속 길이었지만 20여 년 뒤에는 실타래에서 풀려나온 실과 만나 삶의 길로 다시 나타난다.
2007년 무렵부터 아내는 「과거 현재 그리고…」라는 제목과 개념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제목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과거, 현재, 그리고…’처럼 다음 시간을 열어두는 의미이고, 또 하나는 문자 그대로 ‘과거와 현재를 그린다’는 뜻이다.
시간에 대한 질문이 뜨개보다 먼저 있었다. 아내는 ‘미래’라고 끝내지 않고 말줄임표를 남겼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람, 아직 그리지 않은 그림이 그 뒤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이 제목이 단순한 연작명이 아니라 아내가 그림을 대하는 방식 자체를 담고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2009–2012 | 첫 번째 위기, 그리고 자기 그림을 찾다
내가 기억하기로 첫 번째 큰 위기는 2009년에서 2010년 무렵이었다. 2009년까지 이돈희 선생 작업실에서 수학했고, 2010년부터는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자신의 그림을 찾아보기로 했다.
인체도 그리고 꽃도 그리고 추상적인 그림도 그렸다. 점을 찍고 긁고 물감을 두껍게 올리며 별의별 방법을 다 시험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 혼란은 필요했다. 첫 번째 위기는 오히려 ‘남의 그림이 아닌 내 그림은 무엇인가’를 절박하게 묻게 했다.
2011년부터 직물과 짜임을 연상시키는 구조가 보이기 시작했고 2012년에 이르면 실타래와 뜨개바늘, 산과 나무, 하늘과 땅이 반복되는 코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실제 실이 아니라 물감으로 캔버스 위에 그렸다.
그 시작에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뜨개질하던 기억이 있다. 한 코를 만들고 다음 코를 이어가는 손, 누군가를 위해 오랜 시간을 들이는 기다림과 돌봄.
그래서 결국 ‘뜨개는 사랑이다. Knitting is Love.’라는 말이 생겼다. 한 코만으로는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코가 다음 코와 연결되어야 하나의 면이 되듯 사람도 결국 누군가와 연결되어 살아간다.
2013–2016 | 두 번째 위기, 가장 힘들었는데 그림은 가장 뜨거웠다
내가 보기에 아내가 작가로서 가장 힘들었던 또 한 번의 시기는 2013년부터 2016년 무렵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변변한 화실조차 없었다. 작품다운 작품을 마음 편히 펼쳐놓고 그릴 만한 공간도 넉넉하지 않았다. 그런 환경을 제대로 마련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지금도 마음 한편에 남는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다. 내가 보기에는 아내가 가장 힘들었던 이 시기에 오히려 작품이 가장 좋아졌다.
2012년 무렵 발견한 뜨개 회화가 빠르게 자기 언어로 자리 잡았다. 산과 풍경뿐 아니라 사람, 화폐와 역사적 인물까지 그렸다. 멀리서 보면 이미지이고 가까이에서는 수많은 작은 붓질로 해체되는 정우경만의 화면이 만들어졌다.
작품 수도 가장 많았던 시기 가운데 하나다. 현실의 힘든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작업을 시작하면 정말 몰입했다. 언젠가는 내게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라고 말했다. 당시 40대 중반이라 지금보다 체력도 좋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첫 번째 위기에서 자기 그림을 찾았다면, 두 번째 위기에서는 그렇게 찾은 그림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2016–2019 | 내가 가장 아끼는 첫 번째 9m 대작 「대지」
아내의 작품 가운데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작품을 하나만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144.5 × 900.0cm의 첫 번째 9m 대작 「대지」를 이야기할 것 같다.
2016년에 시작해 2019년에 완성했으니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무려 3년이 걸렸다. 9m라는 크기도 대단하지만 내가 이 작품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그 3년을 옆에서 지켜봤다.
작은 붓질 하나가 다음 붓질로 이어지고, 셀 수도 없는 반복이 쌓여 거대한 화면이 되어가는 시간을 봤다. 생활하면서 그리고, 쉬었다가 다시 그리고, 또 그 위에 시간을 쌓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볼 때 완성된 9m의 화면만 보이지 않는다. 그 앞에서 아내가 보낸 3년이라는 시간이 함께 보인다.
이 작품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게 더 크게 다가온다. 이제는 ‘대단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고 때로는 존경스럽다는 마음마저 든다.
내게 「대지」는 단순한 작품 한 점이 아니다. 아내가 살아낸 3년의 시간이 들어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적어도 내게 이 작품은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가격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그 3년을 함께 지켜봤기 때문이다.
작품에 가격을 붙일 수는 있어도 그 안에 들어간 시간까지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정우경의 뜨개 회화를 깊이 이해하게 된 것도 이 작품을 지켜보면서부터였는지 모른다. 「대지」는 한 코 한 코의 반복 속에 작가가 실제로 살아낸 시간이 들어 있다는 것을 내게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낙선과 생계, 그리고 다시 그림
지금 아내의 이력만 보는 사람은 개인전과 수상, 해외전 같은 결과를 먼저 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이력 사이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조금은 알고 있다.
대전광역시 미술대전 초대작가가 되기까지 12년 동안 도전했고, 100호 작품 두 점을 준비해 출품했다가 두 점 모두 떨어진 적도 있었다. 그림을 계속하기 위해 개인 과외도 하고 미술교습소도 운영했다.
떨어지면 다시 그렸다. 안 되면 또 했다. 그리고 또 떨어지면 다시 캔버스 앞에 앉았다.
생각해보면 이것 역시 뜨개와 닮았다. 한 코가 잘못되었다고 뜨개 전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풀고 다시 잡고 다음 코를 이어간다.
2017년에는 먹고는 살아야 했기에 비교적 작은 크기의 귀엽고 친근한 강아지와 고양이도 많이 그렸다. 그런데 생계를 생각하며 시작했던 작은 작품 속에서 하트와 뜨개가 직접 만나면서 오히려 ‘뜨개는 사랑이다’라는 말을 가장 쉽게 보여주는 그림이 되었다.
2018–2025 | 관계, 에너지, 생명 그리고 길
시간이 지나면서 뜨개는 어머니의 기억에만 머물지 않았다. 역사적 인물과 화폐, Mother Teresa와 아이, 가족과 사회적 사건이 들어왔다. 한 코가 다음 코를 붙잡듯 사람이 사람을 붙잡는 관계가 화면의 중요한 의미가 되었다.
2020년 팬데믹에는 마스크를 쓴 딸과 어린 손자의 모습을 화면에 담았다. 어린아이마저 마스크를 써야 했던 낯선 현실은 한 가족의 기억인 동시에, 한 시대를 살아낸 우리 모두의 기억이었다.
서로 가까이 갈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작품 안으로 들어왔다. 반대로 「Smiling Family」처럼 웃고 장난치는 가족도 그렸다. 사랑은 늘 엄숙하지 않다.
같은 시기 「Energy」 연작에서는 반복되는 코가 소용돌이치며 화면 안쪽으로 깊은 공간을 만들었고, 2021년 「3D Energy」에서는 평면의 뜨개가 실제 공간으로 나왔다. 관람자는 작품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작품 안으로 들어간다.
2023년과 2024년에는 뜨개 조직 자체가 꽃과 식물이 되어 생명 에너지처럼 증식했다.
그리고 2025년에는 길이 다시 중요해졌다. 초기의 길이 실제 풍경 속 길이었다면 이제는 실타래에서 풀려나온 실이 길이 된다.
실타래가 살아온 기억이라면 풀려나온 실은 지나온 시간이고 아직 풀리지 않은 실은 앞으로 살아갈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 길은 결국 한 사람의 삶이다.
나 역시 변했다
아내의 그림만 변한 것은 아니다. 나도 변했다.
처음부터 지금처럼 아내의 작업을 이해하고 지지했던 것은 아니다. 그림보다 당장의 생활이 먼저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고, 미술행사 때문에 늦게 귀가하는 아내가 못마땅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오랜 시간 옆에서 지켜보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림은 아내에게 취미가 아니었다. 잘되면 하고 힘들면 그만둘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림은 아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한때 미술행사 때문에 늦게 들어오는 것도 싫어했던 내가 나중에는 아내와 함께 뉴욕에 가서 전시를 치르고 하루 종일 미술관과 갤러리를 돌아다녔다. 록펠러센터 전망대에서 맨해튼 너머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우리는 ‘우리도 저렇게 곱게 늙어 가자’고 이야기했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아내를 최대한 도와주려고 한다.
어쩌면 내가 아내의 그림을 도와준 것만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아내의 그림도 지난 36년 동안 나를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2026, 그리고 다시 「과거 현재 그리고…」
2026년의 작업에서는 거대한 청색과 녹색의 전면 회화, 문화적 기억을 품은 「천년의 미소」, 그리고 네팔 대홍수의 아픔에서 출발한 「히말라야의 아픔」까지 서로 다른 방향이 한 작가의 언어 안에서 만난다.
같은 뜨개 붓질이 사랑과 돌봄을 표현하기도 하고 자연의 상처와 격변을 표현하기도 한다. ‘뜨개는 사랑이다’가 아름다운 것만을 그린다는 뜻은 아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픔을 바라보게 되고, 인간과 자연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의 상처도 외면할 수 없다는 뜻에 가깝다.
36년을 함께 살고, 1998년 이후의 작품을 처음부터 다시 보고 나니 「과거 현재 그리고…」라는 제목이 더 크게 다가온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현재 안에 남는다. 현재는 곧 다시 과거가 되고 그 위에 다음 한 코가 이어진다.
‘그리고’는 시간을 이어주는 말인 동시에 화가가 과거와 현재를 ‘그린다’는 말이다. 뜨개 역시 한 코와 다음 코를 연결한다. 결국 「과거 현재 그리고…」와 뜨개는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아내는 시간을 엮고, 기억을 엮고, 관계를 엮고, 생명을 엮으며, 이제는 그 연결이 흔들리고 상처 입는 순간까지 회화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가장 오래된 출발점에는 어린 시절 바라보았던 어머니의 손이 있다. 실 한 올을 걸고 다시 한 코를 만들며 누군가를 위해 오랜 시간을 들이던 손.
과거, 현재, 그리고…
그 다음의 한 코는 아직 그려지지 않았다.